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를 관람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3시간이 넘는 이 영화는 매우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날로 위협적인 현대의 세계 정세를 고려할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충분히 볼 만한 역사 대작이다.
■ 원자폭탄 개발의 대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 오펜하이머
영화는 미국이 1942년에 시작한 원자폭탄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맨해튼 계획'과 그 책임자로 지명된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 형식이다. 그러나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과 원자폭탄 개발, 그리고 이후의 미소 냉전과 각국의 핵 개발 경쟁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오펜하이머 자신의 내면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제트 엔진이나 로켓 개발 기술이 앞선 나치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두려워한 미국 정부는 1942년에 원자폭탄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을 발족시키고, 개발에 필요한 기술 분야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초빙하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오펜하이머를 임명했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극비로 진행하기 위해, 각 분야의 개발자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없도록 뉴멕시코 주의 사막 한가운데에 10개월 만에 건설된 인공 도시 로스알라모스를 비롯하여, 펜실베이니아 주의 오크리지 등 4개의 거점에 개발 연구소를 분산시키고, 로스알라모스에 거주하는 오펜하이머를 총책임자로 하여 개발을 진행했다. 이들 개발 거점은 원자폭탄 개발이 끝난 전후에는 군 연구소로 변모하였으며, 현재도 활동 중이다. 로스알라모스와 오크리지는 대규모 슈퍼컴퓨터가 설치된 미국의 주요 연구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슈퍼컴퓨터 성능 순위 'Top500'의 상위에 자주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발표된 Top500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미국 ORNL(오크리지 국립 연구소)의 'Frontier'였다. 2022년 6월부터 5연속 1위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엑사스케일 컴퓨터로서 다른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 군사와 불가분의 컴퓨터 역사
맨해튼 계획을 지휘한 오펜하이머의 밑에는 수많은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모였다. 핵분열/핵융합에 관한 선진 연구에서 뛰어난 실적을 남긴 이들 초일류 물리학자들 중에는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과학자들이 많았던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 중에는 뛰어난 수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헝가리 출신의 존 폰 노이만 박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노이만은 현재 '노이만형 컴퓨터 아키텍처'의 고안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의 이 기본 구조는 오늘날 휴대폰에서 슈퍼컴퓨터까지의 연산 시스템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CPU의 기본 구조이다.
노이만이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이유는 원자폭탄의 구조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 반응을 거대한 에너지 방출로 이어지게 하는 프로세스를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하게 시뮬레이션 계산을 하기 위해서였다. 원자폭탄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의 원소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일어나는 핵분열의 연속에서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의 방출을 이용하는데, 이 프로세스를 소형 폭탄 안에서 효율적으로 실행할 물리 반응 예측에는 방대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 방대한 계산을 수행하는 팀을 지휘하기 위해 맨해튼 계획에 합류한 것이 노이만이었다.
원래 컴퓨터는 포탄의 궤도를 계산하기 위한 군사 목적에서 개발되었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 역사에 지금도 남아 있는 최초의 전자 계산기인 '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는 194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전자 공학과에 설치되었다. ENIAC은 1만7000개의 진공관과 10만 개 이상의 수동 부품을 사용한 총중량 27톤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소비 전력도 막대하여, 일단 계산이 시작되면 필라델피아 시내의 전등이 어두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진공관 내부의 여러 전극에 통전하기 위해, 고장이 많아 당시에는 컴퓨터 룸에서 끊어진 진공관을 끊임없이 교체하는 팬츠를 입은 땀에 젖은 오퍼레이터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8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재,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의 CPU는 ENIAC의 처리 능력의 1억 배에 가까운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소비 전력은 3만 분의 1 정도일 것이라는 기술 관련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실리콘 반도체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엄청난지 실감할 수 있다.
ENIAC의 완성은 맨해튼 계획에 맞지 않아 원자폭탄 개발에는 직접 사용되지 않았지만, 전자 계산기의 가능성에 일찍부터 눈을 뜬 것은 노이만이었다. 전후의 미소 냉전 중에서 반복된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의 핵 개발 경쟁에서는 ENIAC을 비롯한 많은 컴퓨터가 물리 계산의 주역을 맡게 되었다.
현재,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자 기기/반도체 기술의 패권 경쟁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이제 반도체가 국가 안보를 뒷받침하는 전략적 중요 자원이라는 인식은 반도체 산업을 넘어 지구적 차원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아직 일본에서도 상영 중이므로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관람하시길 권장하지만, 내용이 매우 풍부하고 등장인물도 많다. 게다가, 놀란 감독의 작품 특성인지, 이야기의 시계열이 교차하고 전개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관람하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과 추축국의 기술 경쟁, 맨해튼 계획, 이후의 미소 냉전 등의 기본 정보를 간단히 훑어보는 것을 권장한다.